시골에 가면 골방에 외할아버지가 계신다.
앉아서 농사일 오래 하셔서 허리 굽으신 지는 옛날이지만
언제나 건강하게 보이시던 외할아버지셨는데,
몇 년 전부터는 눈에 띄게 기력이 쇠해지셨다.
이 손녀딸은 해가 바뀔수록 찾아뵙는 횟수도 줄고
시간 참 빨리 빨리 잘 간다고 생각하는, 이른바 '어른'기에 들어서인지..
외할아버지가 생의 끝고비에 다다르셨다는 것을 실감해내지 못하고,
아직도 우리 외할아버지는 정정하신 걸음을 겅중겅중 떼며 동네 양로원에 잘 다니고 계실 것만 같다.
얼마 전에 뵌 우리 외할아버지 90세시란다.
90이면 10년 모자라지만 근 한 세기 아닌가..
얼마나 오래 사신 건가...
전보다 빠르게 변한다는 이 세상에서
외할아버지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겪으셨던 걸까..
1918년에 태어나셨다는데.
일제시대, 해방, 6.25에...
그 유명한 1,3,5차 공화국도 다 보시고...
지금 2007년에 이르시기까지 외할아버지의 세상은 어떤 풍경이었을까?
이제 외할아버지는 열심히 숫자를 세신다.
예전에는 잠이 안 오신다며 일부터 백까지 세셨던 것 같은데,
이제 일부터 여든까지는 까먹으시고..
여든하나부터 아흔아홉까지 세시고 다시 여든으로 가신다.
그렇게 할아버지는 밤새 수를 세시고 또 세시면서 잠깐씩 잠깐씩 쉬신다.
주무시면서 수를 세시는 것 같기도 하고, 수를 안 세실 때도 앓는 소리가 나오시는 것 같다.
그리고...
지난 설, 외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나를 못 알아보셨다..
그런 생각이 들었다.
우리 외할아버지가 1918년부터 2007년까지 살아오고 계시고, 누군가는 1828년에 태어나서 1918년까지 살았을 테고, 또 누군가는 1738년에 태어나서 1828년까지...
그렇게 90남짓 산 사람 스물 두어 명이면 21세기다.
또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B.C.몇천년에도 도달할 테지.
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다 가는 이 땅이지만
우리 외할아버지가 태어날 때 죽었던 어떤 할아버지,
또 그 할아버지가 태어날 때 죽었던 다른 할아버지...를 생각하면
그 스물 두어 분의 삶만 이어도 2,000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
사뭇 내가 나이먹어가는 것도 이런 더함과 이음의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.
이런 생각을 하면서 외할아버지 옆에서 잠든 게 지난 설이었는데..
그러다가 외할아버지를 모시던 외숙모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셔서..
막내딸인 우리 엄마가 외할아버지를 모셔오셔서 지난 주에 뵙고 서울로 올라왔다.
그런데 점점 기억을 못 하시고, 이상하셔서..
이모네며, 외삼촌이며, 입원 중이신 외숙모까지 잠깐 다녀가셨단다.
그래서 너도 쉬는 날에 또 오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.
오늘 신촌에서 신나게 영화를 보고, 깔깔대며 친구와 통화를 하고,
집에 와서 도넛과 우유를 배불리 먹고, 인터넷을 하고 있던 나는..
엄마의 전화를 받고 '외할아버지' 하고 불러보았지만,
외할아버지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서 두렵고, 슬프다.
외할아버지. 외할아버지.
그동안 도시에서 시골까지라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,
잔정같은 것도 잘 없어서 손녀딸 역할도 할 줄 몰랐던 저는
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.
외할아버지가 계셨기에 저도 이렇게 여기 있는데...
외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.
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, 외할아버지의 삶을 생각하면...
존경이나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감동과 감사를 느껴요..
이번 주 금요일에 퇴근하고 꼭 찾아뵐게요.
그 때... 꼭 뵈어요.
Tag // 외할아버지

댓글을 달아 주세요